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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 이야기

태권도 교실 - 안재욱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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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현 댓글 0건 조회 5,638회 작성일 07-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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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이하 ‘센터’)의 겨울은 따뜻했다!


  “나이수가 바로 시간 가는 속도다.” 어머니의 말씀이 고교생이 되어서야 와 닿습니다. 작년 봄쯤에 태권도 사범이라는 직책을 맞고 자원봉사자 카드를 받았을 때가 말 그대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차례나 수강생 수료식을 끝내고 긴 겨울방학을 맞는군요. 열일곱 살 꼬마 사범의 일 년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시간은 빨리 지나갔지만, 그래도 매주 토요일마다 수강생들과 보낸 한 시간 한 시간은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또렷해집니다.

  외국인들과 같은 도복을 입고, 같은 구령에 맞춰서 차고, 지르고, 돌고, 때로는 ‘맞고’.......(어디로 튈지 모르는 새내기 분들의 발차기엔 어쩔 수 없지요. ‘맞기’는 늘 사범 몫입니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좋았고 재미있어서 했던 것들이지만 이젠 어엿한 일 년 차 사범이니만큼, 그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봤습니다. 돌아보면, 이 새내기 사범의 한 해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한 편의 성장소설 같습니다만, 이 변변치 않은 ‘성장소설’을 나누기 위해 펜을 잡은 이유는 무엇보다, 자원봉사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나눔’이라는 것의 미학에 눈을 뜬 필자의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던 까닭에서였습니다.   

  매주 토요일, 필자는 저녁 일곱 시에 시작하는 태권도반을 그렇게 못 맞춰가던 작은 사범이었습니다. 다행히도 ‘큰 사범님’께서(큰 사범, 작은 사범, 마치 스님들 같습니다) 계셨기에 수업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학원이다, 뭐다 하는 자질구레한 이유로 십 분, 이 십 분씩 늦어 수강생들로부터 신용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봉사하는 날은 봉사에만 매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서, 수업 시작 전보다 더 일찍 와서 매트도 깔아 놓고, 도복도 갖춰 입고 수강생들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수업은 어떻게 할까’ ‘오늘 구령은 베트남어로 해 볼까’(시도는 좋았지만 필자의 실력으로는 수업진행이 상당히 힘들더군요)등등과 같이 늘 새로운 수업 방식을 모색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잘 내린 결정인 듯싶습니다. 학원 교실에 들어가 앉아 서너 시간을 멍하니 있는 것보다 더 무의미한 것이 있을까요. 여섯 시까지는 학원이다, 일곱 시부터는 자원봉사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여기 건드려봤다가, 저기 건드려봤다가, 어줍은 줄타기는 비록 얼치기로 뭔가를 얻을 수는 있어도 뒤끝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반송장처럼 시간을 허송하는 대신, 자원 봉사에 토요일 저녁을 ‘올인’한 것이고요. 그렇게 하고나서부터는 학원이나 학교에서는 결코 얻지 못 했던 것들을 얻었습니다. 나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처음으로 가져본 경험도 그랬고, 태권도반에서 직면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경험 또한 값진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불편한 상황에서 그들과 공감을 느끼는 것은 어려웠지만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봉사란 것은 주기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수강생들과의 좋은 추억을 더불어, 이렇게 값진 것들을 얻어가는 것을 보니 그게 아니었네요.

  처음에는 외국인을 가르치는 태권도반이니만큼 일반적인 태권도 도장에서의 수업과는 달라야 한다고만 막연하게 생각했었지만, 막상 수업을 진행해보니 실력적인 면에서는 한국인 유단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새내기 분들도 계셨지만, 즐겁고 밝은 수업 분위기 속에서 실력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수강생들 중에는 모국에서 이미 무술을 배우다 오신 분들도 여럿 계셨고, 한 러시아 여성 수강생은 몸이 정말 유연해 고난이도의 발차기도 쉽게 소화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한 중국인 수강생이 쌍절곤을 잡았을 때보다 더 무서운 건 없었습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도, 이건 오히려 어설프게 배운 한국의 유단자들이 부끄러울 판이었습니다. 정신력이라든가 적극성이 결여된 태권도인을 많이 봐 온 필자로서는 믿기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필자도 그저 ‘단수 따기’에만 여념이 없었던 어설픈 유단자들 중 하나였기에, 이 점을 깊게 반성하고, 유단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권도 정신이라든가 초심을 바로잡는 작업을 먼저 마치기로 했습니다. 나 자신의 자세도 자세지만, 다른 이를 가르치는 사범으로서, 그 정도의 기본은 되어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원봉사가 자기 쇄신의 계기가 될 줄을 몰랐는데, 어쨌든 고마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평정도 되는 작은 매트를 서른 개 정도 붙여 만든 도장에서, 한 번은 대각선을 따라서 발차기를 연습하기도 하고, 또 한 번은 네 면을 빙 둘러서서 연습하기도 하면서 수업방식도  계속해서 쇄신했습니다. 나중에는 수강생 분들도 어떤 수업 방식이 지루하다 싶으면 즉흥적으로 발차기 기술을 조합해 내서 현란한(?) 신기술을 뽐내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태권도반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이지요. 이렇게, 무술이라기보다도, 태권도를 바탕으로 한 레져 스포츠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즐기며 태권도를 익힐 수 있는 수업에 뿌리를 두고 잔가지를 뻗쳐 나갔습니다.

  

수강생 대부분이 짧은 한 시간 수업을 위해서 아까운 시간을 쪼개서 오신 분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본 동작 설명이나 지루한 이론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즐거운 태권도 교실’이라는 모토를 나름대로 설정하고,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활동을 통해서 수강생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웰빙 열풍’과 함께 부상한 웃음 요가(Laughing Yoga)와 같은 맥락에서, 태권도라는 무술을 이렇게 웰빙과 접목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실천할 기회는 ‘센터’에서 처음으로 갖게 되었군요. 이건 단순히 태권도를 상품화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태권도의 정신이라든가, 자질구레한 이론을 딱딱하고 지루한 방법으로 가르치려 든다면 오히려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좀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즐기며 배우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비단 태권도뿐만 아니라, 태껸이나, ‘한국요리 배우기’같은 부분에서도 한국문화의 특장을 잘 살려내는 동시에 세계의 추세나, 지구적 가치와도 적절한 배합을 이루어 세계적인 문화적 자산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세계화가 한창인 이 대목에서 바라고 또 바라도 부족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다보면 이런 재미있는 일들도 겪습니다. 겨울철이 되면 수강생 수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 재미있는 현상은 수강생의 탓도, 교사의 탓도 아닙니다. 그저 날씨가 추워지고 칼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울의 추운 겨울에 적응하지 못 하는 동남아시아 수강생들이 늘어나고, 결국에는 고작 두 명에서 세 명 정도만 올 뿐입니다. 그것도 러시아 분이나, 베트남에서도 비교적 추운 북쪽에서 살던 분들입니다. 어쨌든, 누굴 탓하겠습니까. 여기서 교사가 해야 할 일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수업을 일찍 끝내고 회식을 가지는 것이겠지요. 그런 날은 모두가 러시아에서 온 빅토리아 씨의 놀림감이 됩니다. 러시아는 지금 영하 사십 도는 족히 될 텐데, 서울의 겨울 날씨는 추운 날씨 축에도 못 낀다며 약 올리는 빅토리아 씨를 새하얗게 질린 채로 바라보는 베트남인 투앙 씨. 모두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받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눔’을 통해서 이렇게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네 것 내 것 타령으로 옹졸해질 필요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요새는 세계 어디서든 “태권도” 이 한 단어면 바로 “코리아!” 나온다고들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태권도가 ‘코리아’를 달고 세계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계인의 무술로 자리를 잡은 것은 역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초국가적 대회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세계적 규모의 대회의 뒷심도 중요하긴 해도, 사실상 더 큰 요인은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많은 무술인의 진심어린 노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태권도 종주국의 본토에서 세계 곳곳의 태권도인들과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땀을 흘린다는 것. 이것 또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이곳 ‘센터’가 없었다면 고교생인 필자에겐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을 텐데, 여기서도 ‘센터’에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센터’에서의 자원봉사는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멋진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늘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어간 태권도반 수강생들에서부터, 한 해 동안 나름대로의 열정으로 수고하셨던 자원봉사자 분들까지 모두 멋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수강생 분들의 호의와 열정 덕분에,  미숙했던 꼬마 사범이 빨리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라도, 함께해준 모든 태권도반 형님 누님들께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쓰고 나서 보니 우스운 부분도 적지 않게 있지만, 이런 미숙함이 생애 첫 원고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생각하니 더 고쳐 쓸 마음이 수그러듭니다. 원고 작성도, 자원 봉사도, 이제는 ‘첫’이라는 딱지를 떼었으니 반은 먹고 들어간 셈입니다. 이 꼬마 사범도, 이제는 ‘첫 해’란 딱지를 떼었으니만큼, 앞으로는 의젓한 부사범으로서 정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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