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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충돌' 한국어교사 - 김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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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지선 댓글 0건 조회 6,940회 작성일 09-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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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한국어 자원 강의를 맡으면서 학생들과 함께 한 지도 어언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중국, 우즈벡, 필리핀, 베트남 친구들을 만났는데 대다수는 베트남 학생들이다. 5~6명의 소수 그룹일 때는 개개인의 학습시간과 정서적으로 공유할 일이 많았고, 15~20명 남짓 인원일 때는 나라별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재미난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새 학기가 되면 수업 준비의 일환으로 소속 학생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회 상황에 대해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지만 실제로 부딪쳐보면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현지 생활 속에서 이루어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한국어교실에서 울려 퍼지는 다국적 화음은 내겐 즐거운 충돌이고 세계를 여는 열쇠다.

   충돌과 관용의 현장 그 솔의 화음을 소개해본다. 학기 때마다 학생들에게 해주는 일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수업 장면이나 체험 활동을 카메라에 담아서 사진을 나눠 갖는 일이다. 처음에는 용도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사진 찍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있었다. 미등록 체류 학생의 경우는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경계를 풀고 포즈를 취하면서 서로 친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모두들 현장 사진을 받아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수업 초기의 일이다. 사진을 나눠주는데 한 학생이 유독 좋아하는 기색이 없다.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어 사진선생을 자청한 일인데 반겨주지 않으니 나 또한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알고 보니 베트남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세 명이 있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인은 3을 싫어하는데 특히 사진 찍을 때 세 사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참고로 축의금을 낼 때 우리는 보통 3만, 5만 단위의 홀수 금액을 맞춰내는데 비해 그 쪽은 짝수로 낸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모습을 찍다보면 둘, 셋, 넷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보수적이고 다소 까다로운 P에게 셋이 찍힌 사진이 몰려 있었다.  ‘그럼 알아서 하세요(사진을 없애도 된다는 암묵적 표시를 P는 눈치 챘을 거다)’ 나의 겸연쩍은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긴장을 풀지 못하였다. P는 과연 사진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그 후 이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난번 일을 의식해서 둘 혹은 넷을 기준으로 학생들 사진을 찍었다. 장난치듯이 둘! 넷! 하는 나의 구령에 평소 행동이 진중하고 예의바른 M이 P에게 하는 말 ‘괜찮아 여기는 한국이야!’ ‘선생님 편하게 하세요.’ P는 웃으면서 끝까지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 전 10년 동안의 한국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간 P, 가끔 그가 떠오를 것 같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 학생과 사진을 찍을 때는 셋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셔터를 누른다. 조금 불편함이 따르지만 싫어하는 걸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또한 숫자 4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지 아니한가. 병원에 가면 4층은 F로 표시되어 있다. 죽을 사(死)라는 동음이의어가 작용하는 꺼림칙한 심기 때문일까. 우리 센터도 F층은 있어도 4층은 없다. 어떤 학생에게 4층 사무실로 오라고 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한참 동안 4를 찾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4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막 웃는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좋은 수라는 것이다. 똑같은 수라도 나라에 따라서 행운 혹은 불운의 수가 된다. 우리들의 생각이 결국은 걸림돌이었다.

   문화의 장벽은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서 허물어진다. 민족주의와 타문화의 수용하고는 별개의 문제다. 의식의 배타성을 벗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세계가 되고 세계는 우리것이 될 것이다.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 가는 일은 공존을 위한 지혜이며 윈-윈의 실현이다. 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 먹는 것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냄새도 안 맡았다. 그러나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느새 내 입맛도 고기 쪽으로 익숙해지고 있다. 고기를 즐기는 학생들은 삼겹살집을 찾는 일이 많다. 어울림을 위한 나의 고기 한 점이 이제는 꽤 몇 점까지 먹을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은 잘 모른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때로는 혐오했다는 사실을. 회교도였던 R은 회식 자리에서 자신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소신을 밝힌 적이 없다. 그냥 적당히 어울려서 식사를 했던 것이다. 돼지삼겹살 집에서 항상 왁자했던 그는 형님으로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알게 모르게 김치만 먹었던 것 같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지만 그 나라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서로를 수용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2020년 한국은 국제 인구가 20%를 차지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다소 과장돼 보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개방화의 물결 속에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하는 문화의 충돌은 어디서나 발생할 것이다. 한국어 교실에서 오늘도 즐거운 충돌을 빚는 나는 그 가벼운 부딪침으로 다른 쪽 세계의 창문을 열어 놓는다. 나의 맞바람 속에 그들의 창문도 하나 둘씩 활짝 열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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